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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벽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의 서쪽 벽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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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 또는 거룩한 성전(히브리어: בית המקדש, 벳 하미크다쉬, 거룩한 집})예루살렘성전 (하르 하바이트)에 있었다. 유대교 믿음에 의하면, 하나님/하느님의 "발등상"을 상징한다(히브리어 "쉐키나").

제1성전솔로몬 기원전 10세기기원전 957 7년 동안 지었다.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이 성전은 모세장막실로, 노브, 기브온 장막을 대체한 것이었으며 유대교의 믿음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1성전은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원전 586에 부숴졌다.

새로운 성전의 건축은 기원전 535에 시작되었다. 히아투스 후에 기원전 521년경까지 건축이 이루어졌으며, 516년 완성되어 515년 봉헌되었다. 에스라서에 기록되었듯이 키루스 대왕에 의해 승인되었으며, 다리우스 대왕이 보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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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후 제2성전헤로데 대왕에 의해 기원전 20년경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이를 제2성전이라고 한다. 70 유대 독립 전쟁이 진압될 때에 로마 제국에 의하여 무너졌으며, 흔히
통곡의 이라고 부르는 서쪽 만이 남았다. 성전 바깥의 벽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슬람 사원인 바위의 은 성전 터 위에 7세기 후반부터 서있었으며 악사 모스크도 비슷한 시기부터 성전 뜰 자리에 서 있었다.

유대교 종말론제3성전에 대한 예언이 있다. 이는 메시아가 오기 전에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이며, 유대교 원리주의자와 보수 유대교에서는 제3성전을 기다리고 있다.

2007 8 30일에, 주택단지에 파이프를 설비하다가 제2성전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2007 10월에 고고학자들이 제1성전 유적을 확인하였다.

통곡의 벽(Wailing Wall)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이다. 구 예루살렘 시가지의 동편에 있으며, 돌로 이루어진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의 서쪽 벽의 일부로, 유대인들은 신전의 상실을 슬퍼하고 재건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이슬람교도들도 이곳을 역시 바위의 모스크 다음가는 성지로 여기고 있다. 이 통곡의 벽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워 넣으면 성취가 더 잘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바위가 있는 곳으로 솔로몬이 수입산 목재, 구리, 금으로 화려한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BC 587년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끌려갔다. “바빌론 유수(幽囚)”가 바로 이 사건을 말한다. , 바빌론이 유대인들을 잡아 가두었다는 뜻이다

 

50년 뒤 유대인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작은 성전을 세웠다. 그리고 훗날 헤롯 대왕이 등장한다. 헤롯은 로마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 헤롯은 동족들에게 “로마의 앞잡이”로 인식되어 정통성에 큰 문제가 있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헤롯은 눈에 보이는 실적을 쌓으려 노력했고, 온갖 토목 공사를 벌였다.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유적들의 상당수가 헤롯의 손을 거쳤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신임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수만 명의 노역을 동원한 대공사는 BC 20년에 시작되어 AD 64년에야 준공했다

 

그러나 66년 여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반로마 투쟁이 일어났고, 70년 디도 장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성전을 다시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추방했다. 로마의 괘씸죄 때문에 유대인은 비잔틴 시대까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서야 일년에 딱 한 번 성전파괴기념일 때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때부터 각지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이 날 모여서 파괴된 성전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전통이 생겼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에는 유대교를 인정했던 관용 정책을 폐지하고 주피터 신전을 세웠다.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가 신전을 접수하여 관리하다가, 614년에는 페르시아가 신전을 파괴한다. 그리고 이슬람교도들이 636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언자 마호메트가 이 곳에서 승천하였다고 하여 황금사원을 지었다. 결국 통곡의 벽은 유대교의 성지인 동시에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먼 훗날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1967년 “6일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제 3차 중동 전쟁을 통해 요르단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빼앗으면서 비로소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다시 편입된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는 예루살렘은 수도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도시이다.

유대인들은 2,000년 전의 영광과 성전을 복구하지 못한 채 이슬람교의 성전의 일부가 된 통곡의 벽 앞에서 여전히 통곡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굴곡은 통곡의 벽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잘 보면 통곡의 벽을 이루고 있는 돌들의 크기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헤롯이 성전을 재건한 ‘제2성전 시대’ 에는 큼직큼직한 돌로 쌓았다. 즉 맨 밑부터 7단까지는 제2성전 시대의 돌들이다. 그리고 그 위의 4단까지는 로마 시대의 돌들을 쌓아올렸고, 그 위에 다시 터키 시대의 돌들을 쌓아 현재의 통곡의 벽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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