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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산

예루살렘 성전의 시온문(다윗의 문) 밖에 위치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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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산(Mt. Zion)예루살렘 성전의 시온문(다윗의 문) 밖에 위치한 산이다. 이곳은 제2성전 시대의 예루살렘 위쪽의 도시 남단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구약성서에 이 지명이 자주 언급되고 있으며, 유대인에게도 예루살렘이나 성지를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시온산에는 다윗 무덤, 최후의 만찬 장소, 마가의 다락방, 베드로 통곡교회 등의 유적이 있다.

다윗 왕(영어: David, 히브리어: דָּוִד, 아랍어: داود)(생애기간 : 기원전 1107 - 기원전 1037)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으로서 40년 간(기원전 1077 - 기원전 1037) 통치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목동, 음악가, 시인, 군인 ,정치가, 예언자, 왕이었으며, 히브리어 성경(구약성경)에서 매우 탁월하게 두드러져 언급되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 왕가의 자손으로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목동이었던 청소년 시절, 이스라엘이 적국인 블레셋 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전쟁 중에 이스라엘을 조롱하던 블레셋 군대의 거인 장수인 골리앗을 자신의 무릿매 돌로 이마를 정통으로 맞춰 쓰러뜨려 죽였고 결국 다윗의 공헌으로 이스라엘은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다윗을 신임하게 되었고 다윗의 음악 연주 실력을 인정하여 자주 그의 연주를 들었다. 그 후 다윗은 군인으로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다윗을 더 칭송하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하였으며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다. 결국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그의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사울 왕의 뒤를 이어 기원전 1077 30세의 나이에 유다지파의 왕좌에 먼저 올랐고, 기원전 1070년에는 통일된 온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는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때부터 계산하여 총 40년 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그는 생애 거의 전체를 통해 이스라엘에 주어진 여호와의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종교적으로 나라를 단합시켰으며, 그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 나라는 큰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성경에는 다윗의 죄와 실수들도 언급하고 있다. 예로서 자신이 왕이었던 때에,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야라는 군인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였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죽도록 조치하여 심각한 죄를 범한 일이 있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예언자 나단을 통해 그의 죄를 밝히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겸손함을 나타내었고, 죽임을 당하지는 않도록 하나님이 자비를 보이긴 했지만, 그로 인해 다윗의 집안에 재난이 닥칠 것이며 하나님이 막아주지는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그의 맏아들 암논은 자기 형제에 의해 죽었고, 셋째 아들인 압살롬은 왕위 찬탈을 노리는 내란을 일으켰으며,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다윗의 뜻과는 달리 스스로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려 하다가 좌절되는 일이 있었다. 다윗의 집안은 예언자가 선언한 대로 재난을 겪었다.

다윗은 자신의 나머지 생애 동안은 계속 하나님과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축을 위해 토지를 마련하고 건축 설계를 하고 많은 자금과 건축 재료들을 모아 아들 솔로몬에게로 넘겨 주었다. 기원전 1037년에 아들 솔로몬이 공식적으로 왕권을 이어 받았고 성전은 솔로몬 통치중에 건축되었다. 또한 성경 기록에는 다윗 왕가를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출현할 것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최후의 만찬 또는 마지막 만찬, 주의 만찬기독교약성서에 기술된 장면 가운데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하기 전날 밤(성력 114일 저녁),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가진 저녁 식사 또는 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을 말한다.

당시 이스카리옷 유다(가룟 유다)를 포함하여 모두가 이 만찬 장소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전해듣는다. 베드로는 닭이 2번 울기 전에 세 번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그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였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찬미를 기원하기 위해 포도주를 들어서 각각 이를 ‘자신의 몸’과 ‘자신의 피’라고 말하며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어 이 예식을 영원히 기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적혀있다. 성체성사 또는 성만찬이라고 불리는 성례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 저녁 식사를 유대교의 신앙전통 가운데 하나인 과월절(유월절) 날의 식사라고 적고 있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강조하여 과월절(유월절) '전 날'의 사건으로 적고 있다. 이로 인해 동서 교회간에, 이 때의 빵이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지, 아니면 누룩을 넣은 빵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도 동방교회 즉, 동방정교회에서는 서방교회에서 성만찬이라고 부르는 성체성혈성사 집전 시 누룩을 넣지 않은 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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